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22. 22世 〉2. <요재공>부윤공휘형묘표(府尹公諱泂墓表)
1. 문헌 목록 〉22. 22世 〉4. <요재공>성유(成裕)配 정부인전주이씨행록(貞夫人全州李氏行錄)
1. 문헌 목록 > 22. 22世 >  
3.<요재공>방등재기(幇燈齋記)휘홍(諱洪)
방등재기(幇燈齋記) 淳昌趙氏 幇燈墓園은 寶城郡 會泉面 花竹里 山八八番地 烽火山 깃대봉 南쪽 大谷을 이어 西南으로 솟은 中峰에 있다. 烽火山은 得糧面 正興里에서 得糧灣으로 가는 中間 會泉面 花竹里 回洞部落 西北便의 山으로 正興山 또는 伽倻山이라고도 하는바 即 寶城邑 峰山里 烏樓마을과 得糧 正興里 및 會泉花竹里의 主山이다. 幇燈墓園은 淳昌趙氏 玄洲公派 參議公諱廷美後宣傳公諱言準의 玄孫 世系二十 世參判公諱東勉을 主壁으로 公의 子 諱鎭禹孫朝湖公諱洪曾孫諱琫植玄孫諱吉勲 等 五代 内外分 十一位의 墓塋 六封墳이 모셔진 곳이다. 系出은 高麗 光祿大夫檢校大將軍守門下侍中 諱 璋을 始祖로 한 圃隱 鄭夢周 牧隱 李穡 等과 더불어 麗末의 國基를 튼튼히 하고자 武臣들의 計略에 反對하셨던 門下侍中 玉川府院君謚忠獻號農隱公 諱 元吉과 朝鮮朝 太宗의 累徵에도 不事二君하신 典工判書樂齋公 諱 瑛의 後 成宗朝 司諫院正言 諱 時平의 子 庇安縣監 玄洲公 諱 彭孫을 派祖로 한 燕山朝 甲子士禍 때 寶城 城北에 隱遁하신 谷城縣監 陶庵公 諱 續과 顯陵參奉 諱 由信父子에 이은 入寶城一世이신 中宗朝 海南縣監 清庵公 諱 之漢의 次孫 參議公 諱 廷美의 後裔이다. 參議公께서 壬辰倭亂 때 蘆洞에 移居하심을 비롯하여 그 後孫이 蘆洞面 擧石里에 集成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先塋은 蘆洞 甘井玉馬擧石里에 모시고 있다. 幇燈原에 墓園을 이루게 된 것은 朝湖公 諱 洪의 長子 諱 厚植께서 檀紀 四二三三 庚子年 頃 先妣의 幽宅의 遷葬으로 비롯되고 그 後 八十余年이 지난 檀紀 四三一七 甲子年에 朝湖公의 墓塋을 公의 玄孫 啓英 等이 配位 옆에 雙封으로 모셨던 것인데 지금에 이르러 時流가 옛날과 달라 子孫이 先鄉을 떠나 散居하게 되고 先塋 遠地에 散在하므로서 宗族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朝湖公 内外分의 墓域에 公의 曾孫인 京畿道 坡州市 所在 凡一金庫株式會社會長 碧山邦基가 地師靜庵 金鍾喆 先生으로 踏山尋穴케 하여 碧山의 祖考와 玄當祖 内外分의 墓를 篤志로 集墓하고 國有地이었던 山城 一四五七五坪을 賣入하여 先靈과 後孫의 平安함을 더하게 하였다. 山理의 吉福은 世人이 云謂할 바 아니나 先塋을 잘 모시는 일은 爲先孝行의 道理이니 父祖에 報恩하고 子侄에 庭訓되게 하는 心志가 아름답다 할 것이다. 烽火山은 江原道 太白山脈의 西南部에 屬한 小白山脈이 南原 靈鷲山 西쪽에서 蘆嶺山脈을 始發하여 西南方 内藏山에 이르러 東의 分脈이 玉果 雪山을 起點으로 全南의 中央地域을 縱走하면서 솟아오른 諸 正幹의 하나인 蘆洞 碧玉山 主脈이 長興加知山熊峙帝岩山을 이루고 寶城 貫珠山에서 得糧 雁峙를 거처 五峰山에 이어 高興 八影山에 이르기에 앞서 貫珠山과 雁峙 中間의 正幹이다. 幇燈墓園은 峰火山 南幹이 내려와 大谷에서 머무르다 西南方으로 뻗치어 치솟다가 다시 南으로 내려와 맺은 名穴이다. 墓園은 山下에서 보이지 않으나 三面을 굽어보는 圓園으로 主山을 峰火山으로 案山을 木稚山으로 하여 副峰을 禮堂의 方丈山으로 하니 西北에 帝岩山이 비치고 뜰아래 五峯山과 得糧灣의 風光이 아름다운 吉地다. 이 墓園은 朝湖公 諱 洪後裔의 先山이다. 墓園의 後事에 邦基龍基基玉 三兄弟와 啓英啓寅兄弟 容洙 寅起 및 邦基의 子 啓元은 흙 한 주먹 잔디 한 포기에까지 先靈의 安慰를 祈求하는 精誠을 다하였다. 歲月이 흐르고 子孫이 거듭할수록 墓園에 滿庭한 後孫은 先塋을 敬拜하며 百代至親의 宗愛를 나누리라. 檀紀 四三二八年 乙亥 五月四日 宗人 玄汌公十八世孫 啓賢 謹記 水原人 白浚善 謹書 朝湖公 諱洪 曾孫 邦基 竪立
 
1. 문헌 목록 〉22. 22世 〉2. <요재공>부윤공휘형묘표(府尹公諱泂墓表)
1. 문헌 목록 〉22. 22世 〉4. <요재공>성유(成裕)配 정부인전주이씨행록(貞夫人全州李氏行錄)